이름 마르크 비비앙 푀
출생 1975년 5월 1일  카메룬 야운데
사망 2003년 6월 26일(28세)
포지션 MF
 년도 클럽  출장수 득점 
 1994–1999  랑스  85  11
1999–2000  웨스트햄  38  1
 2000–2003  리옹  43  3
 2002–2003  맨시티;임대  35  9

 
마르크 비비앙 푀.. 비비앙 푀..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축구 팬으로써, 시티 팬으로써 그때를 잊고 지낸걸 보면 7년이란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기억에서 잊혀지는 데 긴 세월인가보다.


2003년 6월, 프랑스 올림피크 리옹 경기장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 콜롬비아와의 경기중에 그는 의식을 잃어 바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축구역사에 슬픈 기록으로 남고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8세. 사망 경위는 심장마비.

처음엔 나는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다만 몇 해 전 웨스트햄에서 뛰었고 리옹에서 시티로 임대되어 온 선수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티에서 뛰는 그의 플레이는 마치 야생마를 연상시켰다. 그때부터 그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시티로 완전 이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한 무렵,, 더이상 그를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시티에서 부활을 꿈꾼 푀.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일찍이 어린나이에 카메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던 만큼 그의 기량은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영국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클럽인 맨유에서도 이적을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그의 기량은 저평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리옹에서 시티로 임대되었던 당시 시티의 감독인 케빈키건의 신뢰를 얻어 전술의 핵심선수로 부상하였다. 그는 시티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비비앙 푀, 쓰러지다.
다음날 인터넷으로 '비비앙 푀 사망'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콜롬비아전에서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쓰러진 경기장은 그의 본래 소속팀 리옹 홈구장이었다. 

푀..푀...
   
그의 죽음은 카메룬과 세계축구사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프랑스 리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프랑스 선수들과 친분이 깊었다. 같은 대회에 참가한 프랑스 선수들은, 시합전 리옹에서 그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골기퍼 그레고리 쿠페와 최고의 공격수 앙리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나머지 프랑스 선수들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다. 앙리가 골을 넣고 프랑스 선수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어 진한 사랑과 우정의 세레모니를 보여주었다.



              영원한 23번
시티는 그의 등번호 23번을, 리옹은 17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리옹은 카메룬 선수인 장 마쿤 선수가 17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면서 그 번호는 이제 카메룬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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